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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 프로이트의 조카는 홍보를 하지

옛날에 씌여진, 하지만 지금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있는 책들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앤써에서 외계인과 부킹을 할 것 같은 지금 시대에도 변치 않은 것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며(물론 그때까지 앤써가 망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교과서다.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1928년에 쓴 '프로파간다' 역시 그런 책이다. 사람들은 숨겨진 동기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고(그러니까 '그럴듯한 동기'가 아니라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는 '진짜 동기'를 파악해야 하고), 사람들을 모두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 롤모델 한두 사람을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노골적 광고 이외에도 많은 방법이 있으니 이를 잘 고민/공략하라는 이야기를 보면 정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인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로, 기자 출신 홍보전문가다.

피는 속일 수 없다. 그는 프로이트의 조카답게 사람의 심리 깊은 곳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활용한 선전(홍보)에 능하여 여러 성과를 냈다. 최초의 'PR 고문'이라는 명칭도 만들었고 홍보를 과학/산업으로 정리했으며 대학에서 교과과정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러하다 : 홍보의 아버지.

그는 기업 홍보 외에, 세계 2차 대전에서 홍보를 맡아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은근 귀여운 홍보포스터(...) 징집을 위해 제작.



광고의 홍보에 파묻혀 살거나, 짜증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일까. 저자는 책 전반에서 광고에 대한 천진난만해 보일 정도로 믿음과 신뢰를 보여준다. 그는 홍보 담당자 자체에도 무게를 싣는다. '잘못된 상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상품의 장점을 세상에 알리는 선구자'의 느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수백만 명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지배자들이 많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이들은 무대 뒤에서 기민하게 조종하면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인들의 말과 행동을 지배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그런 권위자들에 의해 우리의 생각과 습관이 크게 바뀐다는 사실이다(99쪽)." 이게 자신의 직업을 묘사한 말이라니, 역시 홍보 담당자가 마음먹고 들이대는 깔대기는 대단히 뻔뻔하다.

그의 홍보 담당자 부심은 "교육자와 피교육자, 정부와 국민, 자선 단체와 기부자, 국가와 국가 사이에 이처럼 이해의 가교를 놓는 것이 PR의 목표다."라고 말할 정도다. 그만큼 '갖춰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도 있다. 이런 식이다.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누구든 자신에게 사건을 맡길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부정직하다고 판단되는 의뢰인이나, 사기나 다름없다고 판단되는 제품, 또는 반사회적이라고 판단되는 명분은 거부한다. (...) 실제 법정에서는 판사와 배심원단이 서로 팽팽하게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 여론이라는 법정에서는 PR고문이 판사이자 배심원단이다. 대중은 그의 변론을 통해 그의 견해와 판단에 동의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지나친 부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버네이스는 아무도 담배회사를 비판할 수 없을 무렵 담배 비판의 선봉에 서는 등 나름대로 자신의 양심에 맞게 행동했다. 재미있는 것은, 담배에 대한 진실에 눈을 뜨기 전에는 유명 연예인과 운동선수 등을 내세워 담배 피면 날씬해지고, 구강을 살균해주며 신경도 안정시켜준다고 선전했다는 것. 이때 그의 전략은 이런 메시지였다.

"왜 담배는 남자만 피워야 해? 여자도 필 수 있어! 해방될 수 있어! 너희도 담배를 피워(=시선에서 해방되렴!)"


"담배피면 너를 뚱뚱하게 만드는 달착지근한 후식들은 생각나지 않을거야~" 저자의 뻥(그리고 성과)들 중 하나.

물론 그렇다고 버네이스가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사실 버네이스는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를 이룬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가 저지른 행동 중에는 돈있는(기업의) 편을 들고, 잘못된 프레임을 세상에 심어준 것도 있다.


이 책에서 깊이있는 홍보 정보나, 홍보의 프로세스 등을 참고하는 것은 무리다. 책에서는 예시를 들 수 있는 부분만 정확히 짚고 넘어가며 두루뭉실하게 눙치거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도에서 끝내기도 한다. 짜임새 있는 목차도 아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적어도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밀거나 당겨야하는지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목적은 자신과 자신의 업적을 칭찬하고, 잠재적 고객이 자신을 선택하게 하는 큰 범위의 홍보다. 자신의 위치를 대중의 일부에 놓았다가, 그 대중을 이끄는 선도자에 놓았다가, 기업의 좋은 친구로 놓아 가며 홍보의 긍정적인 부분만 보여주는 것이다. 홍보의 프레임 자체를 긍정적으로 설정한 무대에서 자신이 주인공!  게다가 책에서 등장하는 예시의 대부분은 저자인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진행시켜 성공한 사례다! 이런 게 진짜 깔대기이자, 본받을 만한 홍보 담당자의 자세!

실제로 이 책은  원래 목표로 삼은 '선전(홍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효과는 없었지만 저자에게 명예와 새로운 의뢰인 그리고 돈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홍보 자체를 하나의 학문으로 만들어, 대학에서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본인은 홍보의 아버지 자리에 앉아 평생 수백 명의 클라이언트에게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이렇게 거대한 깔대기와, 인간의 성향에 대한 인사이트를 배울 수 있다면 이 책값 이상을 벌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홍보를 업으로 삼거나, 관련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아래는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고싶었던 부분 몇 줄.


  인간은 대개 스스로 감추고 있는 동기에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는 이러한 일반 원리는 개인 심리 뿐만 아니라 대중 심리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유능한 선전가가 되려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당사자들이 제시하는 동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러한 행동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동기를 파악해야 한다.

사회 구조, 집단과 개인의 관계, 소속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자는 기관차의 실린더와 피스톤에 대해서 모두 알더라도 증기가 압력을 받으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른다면 엔진을 작동할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은 사회라는 엔진을 가동하는 증기다. 선전가는 인간의 욕망을 이해해야만 현대 사회라는 거대하면서 짜임새가 느슨한 기계를 비로소 조종할 수 있다.

(...)

소비자가 새 피아노가 아니라 새 자동차에 돈을 쓰는 계획을 세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이라는 상품보다 교통수단이라는 상품을 더 많이 원하기 때문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가 자동차를 구입하는 이유는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이 현재의 집단 습관group custom이기 때문이다.

(123~126p)



  생산 관리자라면 자신이 취급하는 자재에 관해 빠짐없이 알고 있어야 하듯이 기업의 PR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일반 대중의 구조, 편견, 변덕에 정통하고 있으면서 주도면밀하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대중에게는 나름의 기준과 요구와 습관이 있다. 이를 바꿀 수는 있지만 거슬러 행동해서는 안 된다. 여성이 한 세대 전체를 설득해 롱스커트를 입게 만들 수는 없지만 패션 지도자를 통해 접근하면 뒷자락이 길게 끌리는 이브닝드레스를 입게 만들 수는 있다.

(...)

기업은 대중이 이해하고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목적을, 목표를 알려야 한다.

(139p)



기사 소재에 선전의 의도가 숨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뉴스로서의 가치다. 기사 소재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편집인은 보통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욕 타임스>의 경우 뉴스로서의 가치를 기준으로 기사를 선별한다. 그 외 다른 이유는 없다. <뉴욕 타임스>의 편집 위원 들은 완전히 독립적인 상태에서 무엇이 뉴스이고 아닌지를 결정한다. 그들은 검열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떠한 외부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편의주의나 기회주의에 편승하지도 않는다. 의식 있는 신문 편집인은 대중에 대한 자신의 의무는 뉴스라는 점을 늘 명심한다. 의미 있는 사실은 곧 뉴스가 된다.

PR 고문이 어떤 생각에 생기를 불어넣어 다른 생각과 사건들 틈에서 제 몫을 차지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생각은 당연히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를 두고 '뉴스를 근원에서부터 오염시킨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PR 고문은 편집인의 사무실에서 다른 사건들과 경쟁해야 하는 그 날의 사건 가운데 일부를 연출할 뿐이다. 그가 연출하는 사건들은 신문 독자들에게 특히 반응이 좋을 때가 많다. 그는 그러한 대중을 염두에 두고 사건을 연출한다.

(253~254p)



대중은 자신의 견해와 습관을 형성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방법들의 실체를 갈수록 꿰뚫어보고 있다. 자신의 생활이 전개되는 과정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대중은 자신의 이해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광고를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대중이 광고 방법에 대해 아무리 까다롭고 냉소적으로 나온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반응하게 되어 있다. 대중은 늘 음식을 필요로 하고, 오락을 갈구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지도자를 따르기 때문이다.

(260~261p)